한국 걸그룹의 역사

 국내에서 걸그룹(Girl Group) 혹은 소녀 그룹(少女-)이라는 용어는 1993년부터 언론에 처음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4] 이후 1997년경부터 S.E.S.핑클 등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들이 그룹을 만들어 가요계에 데뷔하면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5] 일반적으로 대중가요에 종사하는 어리고 젊은 여성 가수의 집단적 구성을 일컫는 용어다. 이 문서는 한국 걸그룹을 기준으로 작성되었다.한국 최초의 걸그룹은 저고리 시스터즈이다. 이들은 무려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39년에 데뷔해 해방 당시까지 활동했다. 정식 앨범을 발매하지는 않았지만, 무대 의상으로 저고리를 입고 나와 나라 잃은 조선인들에게 민족의식을 환기했다. 이후 1953년에 데뷔한 김시스터즈(The Kim Sisters)가 1950~60년대 미국에서 활동을 했는데, 22번이나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할 정도로 지명도가 꽤 컸다고 한다. 한국 내에서, 1990년대 이전까지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대중가요 그룹이라고 하면 1950년대 '은방울 자매'[6]1960년대 '펄 시스터즈', '이씨스터즈', '정시스터즈' 1970년대 '바니 걸스', '쿨시스터즈'[7], '유리시스터즈', '희자매'(인순이가 속했던 그룹) 1980년대 초중반 '서울 시스터즈'(방실이가 속했던 그룹), 국보자매, 숙자매 등이 언급될 수 있으며 주로 자매 또는 자매 컨셉의 2, 3인조 위주로 활동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이[8]은 민요 또는 성인가요, 즉 트로트 콘셉트였고 지금과 같은 의미의 걸그룹은 1980년대 말에 활약했던 세또래가 시초격이다.[9] 세또래는 1980년대 당시 일본을 비롯해 한국과 대만, 동남아시아를 강타했던 3인조 걸그룹 '소녀대'를 모방하여 젊음과 상큼함을 내세운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하였다. 세또래 멤버들은 노래 실력은 요즘 걸그룹들에 비해 살짝 아쉽지만 키는 3명 모두 159cm로 상큼한 이미지를 내기 충분했다.[10] 무대에서 덤블링을 하고 다리를 앞뒤로 1자로 찢는 등 신체 능력은 키에 비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퍼포먼스가 대단하였다.

1993년에는 언론에서 최초 '걸그룹' 이라는 단어를 붙이며 여성그룹들이 대거 등장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컨셉의 여자버전인 3인조 걸그룹 애플과 바로 몇주 후 CF 모델 출신들로 결성한 S.O.S라는 4인조 그룹이 나왔고[11] 같은해에는 처음으로 언론에 걸그룹으로 소개된 중앙대학교 연극영학과 4학년생들이 만든 칼라라는 그룹으로 1993년 강변가요제에서 "후회하고 있는거야"라는 데뷔곡으로 대상을 받았다. 칼라는 당시 걸그룹이라 불렀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빅마마같은 보컬 그룹이라 할 수 있다. 이 외에 와일드 로즈, 점프, 트윈스, 크림, 코메트 등이 있다. 대중가요계 걸그룹 선풍여성그룹 가요계 새바람


1994년에는 윤현숙과 이혜영의 2인조 그룹 코코, 1995년에는 3인조 그룹 쎄쎄쎄, 1996년에는 비비와 '뚜띠'라는 2인조 그룹이 등장하여 인기를 끌었지만 오늘날의 걸그룹 컨셉과는 차이가 있었다. 사실, 위의 사례는 걸그룹이나 아이돌 컨셉이 아닌 듀오라고 봐야 한다.

실질적으로 현재와 같은 걸그룹이 대중가요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97년 11월 말, S.E.S.였다. 데뷔와 동시에 1997년 외환 위기에도 60만장이라는 높은 판매고를 올리는 등 큰 인기를 끌었고, 다음해 1998년 숙명의 라이벌 핑클 역시 '루비' , '내 남자친구에게' 등의 곡들이 크게 히트시키면서 두그룹간의 양강구도를 형성했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최초의 5인조 걸그룹 베이비복스[12]가 당시에는 생소했던 섹시와 걸크러시 컨셉을 선점하며 인기를 누렸고 중국까지 활동반경을 넓히면서 걸그룹 시장의 시작을 알렸다.

앞서 세 그룹의 히트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디바한스밴드오투포클레오샤크라파파야 등이 잇따라 데뷔하면서부터 걸그룹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렸다. 이 후 쥬얼리슈가밀크투야SWi.TLUV 등 많은 걸그룹들이 제2의 SES, 핑클을 자처하며 등장하였다.

현재 걸그룹의 공식이라 할 수 있는 청순 소녀→젊은 여성 컨셉은 원조 걸그룹 S.E.S., 핑클, 베이비복스를 통해 자리잡혔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걸그룹 열풍으로 제대로 된 시작을 알리고 길을 튼 것이 바로 1990년대 후반 1세대 걸그룹이었다. 1980년대에는 아직 일렀다.

그러나 2000년 하반기부터 걸그룹보다는 타 장르 가수가 주목받았다. 기존의 메이져 걸그룹들이 건재하긴 했지만 영향력은 1990년대보다 약해진 편. 이 때는 보아의 데뷔를 기점으로 하늘장나라죠앤이수영이효리채연아이비 등 여성 솔로 가수들의 전성기였다. #### 특히, 가수 보아는 고등학교 1학년 시절 No.1 무대로 정상급의 인기를 누렸다. # ## 결국 SM이 걸그룹 몇 개를 조립하기 시작한다. 그 걸그룹들은 바로 신비와 밀크, 이삭 N 지연이다. 그러나 당시 SM이 암흑기임으로 인해 내놓는 그룹은 전부다 망했다. 이 때가 걸그룹들이 겪은 위기였다.

참고로 이 영상에 나온 1988년생 하늘과, 하늘의 동갑 친구 죠앤은 저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고 보아는 저 당시에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러므로 2000년대 초반엔 여중생 가수들의 전성기이기도 했다.[13] 이 외에 어린이들로 구성된 컬러링 베이비 7공주도 인기였다.

선풍적인 인기를 끈 1세대 걸그룹의 전성시대는 2003년부터 소강되기 시작했다. 2002년 말 핑클과 S.E.S.의 퇴장 이후 써클파파야티티마오투포투야밀크신비걸프렌드스위티Luv데자부아이써틴(i-13) 등 정말로 많은 여성 그룹들이 활동하였으나 S.E.S와 핑클만큼의 인기를 끌지 못했다. 2000년대 초중반 시기는 주로 남성 발라드 가수들이 가요계 상위권을 완전히 점령한 시기였으며, 2003년 동방신기가 데뷔하는 등 남자 가수들에 밀려서 2003년~2006년에는 인지도 있는 걸그룹 가운데 데뷔한 팀이 별로 없다. 차라리 빅마마와 버블시스터즈가 데뷔해서 여자 아이돌 그룹에 묵직한 훅을 날렸다는 느낌이 강할 정도. 이 시기에 그나마 팬덤을 확보한 걸그룹으로는 샤크라슈가쥬얼리천상지희 더 그레이스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들 중 가장 데뷔성적이 미약했던 쥬얼리는 다소 늦은 3집부터 전성기를 맞이해 걸그룹 암흑기인 2000년대 중반을 독식하다시피 했다. 걸그룹 명가 JYP는 진작 1세대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안타까운 현실...

브라운 아이즈의 여성그룹으로 브라운아이드걸스가 데뷔하였다.[14] 얼굴없는 그룹으로 데뷔하는 굴욕아닌 굴욕을 겪었다. 전성기는 댄스그룹으로 전향한 2008년 이후라 원카소와 시대를 같이한 2세대 걸그룹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현재 활동하는 그룹 중 최장수 걸그룹이다.

당시의 음악 트렌드를 반영하여 특이한 조합의 그룹이 나오게 됐는데, 바로 2006년에 데뷔한 씨야다. 걸그룹에 목말랐던 이들은 씨야의 남규리에 열광했다.[15] 1세대 걸그룹이 퇴장한 이후 10만장을 넘긴 음반판매량을 기록했던 거의 유일한 여성그룹이었다. 이외에 여배우들로 구성됐던 프로젝트 그룹 더 빨강의 막내 멤버 배슬기도 남규리와 같은 포지션으로 걸그룹에 굶주렸던 남성들 사이에서 잠깐 주목을 받았다.

암흑기(2003년~2006년)에 데뷔한 팀들은 아무래도 걸그룹을 위해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오래 받았다기보단 비쥬얼 중심의 연기자, 모델 출신들로 급히 구성되었기에 가창력이나 퍼포먼스 부분에서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하기엔 아쉬움이 많이 남았으며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 한마디로 걸그룹 시장이 1세대 시절보다 더욱 도약해 2세대로 가기 위한 일종의 과도기였던 셈.

이 암흑기에는 이런 졸속으로 급히 진행된 걸그룹 제작이 너무 흔했는데, 당장 시장에 걸그룹이 없으니 마음 급한 중소회사들은 얼른 내서 자리는 잡고 싶고, 그러나 준비해둔 인재풀은 없으니 이런 경력직들로 이뤄진 팀 구성을 하게 됐다. 모닝레드삭스제이하트키스파이브퍼퓸더 빨강 등이 그런 기획의 산물들이다.

신인이지만 처음부터 대중들의 시선을 강렬하게 끌어야했고 이미 시장의 솔로 여가수들 대부분 섹시 컨셉트를 밀고 있어서 이들 역시 대부분은 팀 멤버들의 과거 경력, 인지도를 활용해 언플한 뒤, 자극적인 섹시 컨셉과 싸구려 노이즈 마케팅(노출, 선정성 안무)들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기도. 팀 수명을 재촉하는 안좋은 것들은 거의 다 했다보면 된다. 바로 위 문단에 서술된 걸그룹 멤버들 역시 해체 후에 팀 활동 시절을 기억하기 싫어하며 흑역사 취급한 사례도 많다. 그나마 순한 컨셉이던 모닝 출신들은 경력 언급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 정도.

안그래도 시장 트렌드도 소몰이 음악/발라드가 차트 강세였던지라 이 때 나온 걸그룹들은 대중들에게 '실력없다'고 각인되어 무시당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고, 실제 대부분이 위에 서술된 마케팅을 주로 펼쳤기에 그렇기도 했다. 엘프, 레이디, 키로츠 등의 팀은 왠만한 일반인보다도 못한 수준이하 실력들이었기도 하고... 요새 나왔으면 오리처럼 가루가 됐을

대형 기획사들은 이들처럼 암흑기에 급히 시장에 내지 않고 몇 년간 인재 육성에 집중했다. 이 시기 SM은 기존 솔로와 듀오 경력이 있던 다나린아와 연습생 스테파니선데이 4명을 묶어 천상지희를 데뷔시켰다. 2002년에 배출했던 각종 기획사들의 후속 걸그룹들이 가요계에서 성공해 자리 잡았다면 이같이 암흑기는 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존버하던 중소의 기적 쥬얼리가 다 해먹던 시절. 이 시기의 실패 사례들을 딛고 2000년대 후반부턴 걸그룹 시장이 업그레이드 되어 활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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